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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제주 4·3 사건 김일성 지시설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

- 北 공산당은 중앙당 유일관리제 … 지역당의 자의적 결정도 처벌받아
- 역사적 사실 알고 억울한 희생자 아픔 치유해야

[한국방송/박기문기자] 내가 ' 제주 4·3 사건은 북한 김일성 지시로 촉발됐다 ' 고 주장하자 14 일 민주당은 나를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 어불성설이다 .

 

오늘아침 언론 보도를 보니 어떤 분은 ‘ 제주 4·3 사건을 김일성이 ? ’, ‘3.1 운동도 김일성이 했다고 주장할거냐 ’ 는 식으로 나의 주장을 호도했다 .

 

우리 정부 진상 보고서에는 ‘1947 년 3·1 절 경찰이 시위 군중에게 발포해 6 명 사망 , 8 명 중상을 입힌 사건이 4·3 사건을 촉발했다고 돼 있다 . 보고서 어디에도 ' 김일성 지시로 4·3 사건이 촉발됐다 ' 는 내용은 없다 . " 남로당 제주도당이 조직적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다 " 면서도 "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 고 명시하고 있다 .

 

보고서의 이 부분을 보면 무장 폭동이라는 단어가 없고 마치 그 무슨 민중 인권 활동처럼 읽혀진다 .

 

김대중 대통령도 공산주의자들의 무장폭동이라고 했고 노무현 정부 때 진상 조사에서도 남로당 제주도당의 폭동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주도당이 왜 무장폭동을 일으켰느냐이고 결국 제주 4.3 사건의 진실규명에서 가장 먼저 해명해야 할 문제는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느냐이다 .

 

당시 박헌영 등 남로당 지도자들은 미 군정의 체포를 피해 평양으로 들어간 상태이고 소련공산당의 지시로 남로당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권은 김일성의 평양 중앙으로 이관된 상태였다 .

 

김일성은 남북총선거와 5.10 단독선거 반대를 당 결정으로 채택하고 평양 라디오 방송은 매일 거국적인 투쟁에 나서라고 선동했다 . 따라서 남로당 중앙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의 결정으로 일어났다 .

 

다음으로 공산당의 운영방식을 보아도 김일성의 지시는 명백하다 .

 

공산당은 중앙당 유일관리제로 운영된다 . 유일관리제란 중앙당 결정을 거부해도 처벌받고 중앙당이 결정하지 않은 문제를 자의대로 결정해도 처벌받는 강철 같은 당 운영 방식이다 .

 

당시 제주도당의 일부 지도자들이 무장폭동을 주장했다고 해도 후에 김일성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면 즉시 중단하고 배를 타고 북으로 도주했어야 했다 .

 

무고한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이 뻔한 무장폭동을 평양 중앙의 지시나 허가 없이 도당의 결정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은 공산당의 작동 원리에 맞지 않는다 .

 

마지막으로 4.3 사건에 대한 김일성의 평가이다 .

 

4.3 사건은 당시 평양 중앙에서 김일성과 박헌영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던 때에 발생한 사건이다 . 당시 박헌영은 스탈린에게 남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승만정권에 대한 저항은 자기가 지휘하고 있는 것이지 김일성이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당 중앙의 지휘권을 자기에게 넘겨달라는 비밀편지를 계속 보냈다 .

 

문제는 스탈린이 박헌영이 보낸 비밀편지를 모두 김일성에게 다 알려 주었다 . 이렇게 김일성과 박헌영 사이의 갈등은 6.25 전부터 시작되었고 김일성은 박헌영과 남로당 지도자들을 숙청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남로당의 무장투쟁에 대해서 북한 노동당 역사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

 

그러나 제주 4.3 사건만은 유별나다 .

 

남로당의 다른 지도자들은 박헌영과 함께 처형되거나 숙청되었지만 , 김달삼 , 고진희 등 무장폭동 주모자들은 북한으로 올라갔고 영웅으로 대접받고 후에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었다 . 남로당의 무장폭동을 잘 다루어주지 않는 김일성이지만 다부작 드라마 ‘ 한나의 메아리 ’ 를 만들어 김씨일가에 대한 충실성 교양에까지 이용했다 .

 

4.3 사건은 남로당의 무장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현대사의 비극이다 .

지금은 좌우이념 무력 충돌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한 분들의 넋을 기리고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때이다 .

 

다시는 이런 일이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그러자면 역사적 진실을 알아야 한다 .

그렇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도 부인하고 오직 자기만의 주장을 절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 극우 색깔론 ’ 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지성적인 고찰이 아니다 .

 

역사의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덮어 버릴 수 없다 .

 

2023.2.15.

국회의원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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