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김국현기자) 열린 채용은 열린 조직이 만든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경우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일찍이 2000년도 초중반부터 이력서에 불필요한 인적사항을 삭제하고, 이 같은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신입사원의 입’에 있었다.
청년 6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빌딩. 이들은 2016년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코바코)의 신입사원들이다. 입사 1년 차. 지난해 채용 당시를 잠깐 회상하며 한 청년이 입을 뗐다.
“면접날 대기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아요. 조직에서 구직자들 다 불러놓고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거 사실 ‘갑질’ 아닌가요?”
자칫 긴장감이 도는가 싶더니, 인사담당자가 이내 응수했다.
“그렇죠. 그때 시간 안배를 좀 더 효율적으로 했어야 했어요. 당시 내부적으로도 그 문제를 공유했고, 차기 채용 때부터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수직적 조직에 익숙한 이들에겐 다소 어색한 풍경. 하지만 코바코에서는 자연스러운 그림이다. 매년 당해 연도 채용된 신입사원들의 생생한 후기를 듣고 개선사항을 도출하는 것.
김민정 코바코 인사과장은 “신입사원 교육 등을 통해 채용 과정에서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고,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 점인지를 물어보고 최대한 다음 채용에 반영하려고 한다”면서 “이때 신입사원들은 경직되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의견을 개진한다”고 말했다.
“저희는 면접 때도 가급적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래야 지원자들이 역량을 끝까지 보여줄 수 있거든요. 토론 면접의 경우도 사회자와 찬성, 반대 측 토론자를 추첨을 통해 뽑아 즉석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어요.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나 토론에 임하는 역할에 따른 유불리가 있는 평가 방식이라는 신입사원의 의견을 받아 올해 면접에서는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매년 오전에 실시되던 필기시험도 올해부터는 오후 시간으로 옮겼다. 지역 응시자에 대한 배려 차원이었는데, 이 또한 사원의 의견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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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신입사원 6명.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매년 당해 연도 채용된 신입사원들의 면접 후기를 듣고 채용 개선사항을 도출한다.(사진=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
2005년부터 일부분 블라인드 도입
자연히 이곳 신입사원에게 한때의 채용 과정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기자가 “나 때만 해도 이력서에 주민번호를 썼었다”고 하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업팀 김세연 씨는 “여기서는 사진을 붙이지도, 성별을 알 수 있는 항목이 있지도 않아 면접 전까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스펙을 따지지 않고 오직 실력만으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거라 자부심이 더 높다”면서 “친구들도 다들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코바코는 공기업 중에서도 블라인드 채용 우수사례로 꼽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권 공기업 중에서는 가장 선도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고 체계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곳이다. 김 과장은 “지난 2015년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도입한 후 서류전형 단계뿐만 아니라 면접에까지 능력 중심 구조로 끌고 갔다는 점에서 모범 사례로 꼽힌 것 같다”고 말했다.
“신공사 출범과 함께 전문 역량 향상에 대한 대내외 요구가 증대됐습니다. 이에 따라 핵심사업에 인력을 집중하며 사업 역량을 확대해야 하는 한편, 경영관리 부문은 개개인 인적자원의 전문성을 키워 역량을 제고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공사 내부적으로 직무 중심의 인력운영체 확립이 필요했고, 채용에서부터 인사, 평가 등 인사 전반에 이르기까지 ‘직무 중심 인력운영’이 화두가 됐습니다. 그때 ‘NCS 채용 방식’이 공사 인력운영의 기본 방향과 절묘하게 맞아 조기에 도입하게 됐습니다.”
시스템화한 건 약 3년 전이지만, 사실 코바코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일정 부분 블라인드 채용 형식을 도입했었다. 가장 먼저 ‘연령’을 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12년 신입사원 중에는 ‘과장급’과 나이가 같은 직원도 있다. 동기인데 띠 동갑이기도 하다.
김 과장은 “내가 입사한 2005년에도 한 지원자가 면접실에서 ‘제가 다른 신입에 비해 나이가 좀 많아서’라고 운을 떼자 면접관들이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나이가 많은 줄 아무도 모른다’고 했었다”면서 “이처럼 10여 년 전부터 연령 제한 철폐를 시작으로 서서히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해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역인재 할당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인재에 가점을 주는 형태로 채용 비율을 늘려간다. 김 과장에 따르면 비수도권 인재가 꾸준히 입사하고 있다.
신입사원은 매해 1회, 10명 안팎으로 채용한다. 채용 때마다 수천 명이 몰리는 상황.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스펙’ 없이 옥석을 가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면접 유형에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김 과장은 “2차에 걸쳐 이어지는 면접전형의 경우, 공사의 미래를 함께할 인재들을 대면해 선발한다는 점에서 면접 과정, 면접 방식, 면접 문제 등을 코바코의 인재상에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직 내에서 창의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특히 ‘창의 면접’을 치열하게 구상한다. 질문 구상은 면접 전날까지 이어진다. 질문 내용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동봉해 지원자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아쉽지만 ‘기출 문제’는 대외비다. 대략 이런 식이다.
“법 직무 지원자의 창의성 면접의 경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이익이 되는 법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보라’는 식의 문제가 나갑니다. 논리에 근거를 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제시돼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다고 서류전형을 허투루 보는 건 아니다. 자기소개서도 꼼꼼히 본다. 면접 전에 면접관들이 밑줄을 그어가며 시험 공부하듯이 검토한단다. 김 과장은 “여타 서류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전면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별 특성에 맞춘 질문을 하려면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업무적합성 높여, 퇴사율 0%
조직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 전과 후, 어떻게 바뀌었을까.
“예전에는 조직에서 제너럴리스트를 많이 요구했었어요. 순환 근무에 효율적이라는 이점 때문이었죠. 최근 들어서는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하고 있죠. 조직의 인재상에 맞춘 철저한 기준으로 직무 관련성을 평가하다 보니 이점이 더욱 많습니다. 우선 수습기간이 짧아지고요, 자연히 실무에 빨리 투입됐고요. 무엇보다 직원의 업무 적합성이 높아서인지 퇴사율이 거의 0%라고 보면 됩니다.”
김 과장은 “정부에서 새롭게 추진 중인 정책이 우리가 기존에 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조직 내에서는 꾸준히 직무와 연관해서 가장 적절한 인재를 뽑기 위한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