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최동민기자] 2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는 새벽시간에 발생한 데다 폭 1m정도의 좁은 복도에 경보기까지 고장나있었고, 출입구 부근에서 발생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9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새벽 5시께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위치한 한 고시원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고시원 3층과 옥탑방 거주자에 거주하던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사망자 수는 기존 6명에서 1명 더 늘었다.
특히 고시원에 묵던 사람들은 대체로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상자들은 고대안암병원, 서울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대병원, 한강성심병원, 한양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등 병원 8곳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화재는 3층 출입구 부근에 위치한 쪽방에서 불이 시작돼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소방당국은 3층 출입구 근처에 있는 쪽방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사상자들이 대피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소방대와 인명구조대원이 진입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불이 난 고시원 복도의 폭이 약 1m 정도로 매우 좁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시원 2층에서 2개월째 거주하고 있다는 정모씨(40)는 “평소 사람이 2명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였다”면서 “각 호실의 크기 또한 약 6.6㎡(2평)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무척 작은 쪽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해당 건물이 30년이 지난 노후건물이라 스프링클러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경보기가 고장나있었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이다. 그는 “대피하신 분들이 경보기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소리를 들었으면 깼을 텐데, 원장님도 하필 경보기가 고장 났다고 했다”고 했다.
몇몇 생존자들은 고시원 3층에서 배관을 타고 밖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 건물 외벽 파이프 배관을 타고 탈출한 A씨는 병원 관계자를 통해 “손에 걸리는 걸 잡고 내려왔고, 창틀을 잡았는데 온도가 너무 높아서 왼손에 화상을 입었다”면서 “전날부터 내린 비로 인해 창틀에 고인 빗물로 코와 입을 적시고 내려왔다. 창이 좁아 어깨를 배는데 힘들었다”고 전했다.
완강기에 몸을 의지해 건물을 빠져나온 경우도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반바지만 겨우 챙겨 3층에서 탈출했다는 B씨는 왼쪽 어깨와 상체 부근에 온통 붕대를 감은 채 "상의를 안 입어서 열기가 등으로 온 것 같다. 등쪽에 화상을 입었다"며 "301호 쪽에서 누군가 소화기를 쏴서 (진화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고 회상했다.
고시원을 빠져나온 거주자들은 서울 종로 1·2·3·4가 주민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일찍 몸을 피할 수 있었던 2층 거주민이다. 주민센터에서 만난 2층 거주자 김모씨(41)는 “5시에 이미 3층에서 불이 많이 타고 있었다. 나와서 보니 누가 3층 창문에 계속 매달려 있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권혁민 종로소방서장은 이번 화재에 대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화재가 대부분 바깥으로 출화가 돼 화세가 거셌다”며 “출화가 되면 소방대와 인명구조대원이 진입하기도 어렵고 안에 계신 분들이 탈출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화재가 출입구 부근에서 발생했다는 최초 목격자의 의견이 있었다”며 “심야시간대라 신고가 늦어지고 출입구가 봉쇄됨에 따라 대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경찰은 수색종료 직후 감식반을 투입하고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확보에 들어가는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1차 감식을 마친 뒤에는 10일 오전 9시부터 합동감식에 들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