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양복순기자) 평화의소녀상이 있는 옥구공원으로 가는 길은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1년 전, 위안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을 보고 평화의 소녀상을 시흥시에도 건립해보자하는 생각이 추진으로 이어졌고, 이는 2016년 74개 단체가 소녀상 건립취진위원회를 통해 8월 6일, 옥구공원에 안치하게 이르렀지요…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그 1년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위안부할머니는 37명만이 남아있습니다.
일본과의 위안부문제는 양국 간의 억지 섞인 합의로 국민들은 실망하고 있고 이는 폭우 속 기념식장에서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거룩한 용서는 국민정서에 인정되는 시점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8월 20일 오전 11시. 시흥시여성단체협의회 주관으로 정왕동 옥구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평화의소녀상 1주년 기념식이 내·외빈을 비롯한 시흥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비가 와서 참석자들이 많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건 기우였습니다.
기념식 사전 행사로 시화병원 앞에서는 서해중, 월곶중, 정왕중학생들이 성폭력예방 가두캠페인을 벌여 옥구공원 기념식장까지 걸었는데요,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역사를 인지하는 모습을 보아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시흥시여성단체협의회 이명순회장은 활동보고를 마친 후 “평화의소녀상을 안치할 때 위안부할머니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이를 우리의 아이들이 자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윤식시장은 “시화병원부터 성폭력예방 캠페인을 벌인 우리 학생들을 보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흐뭇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전쟁으로 인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분들을 두고 왜 평화의 소녀라고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 말살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아픈 우리의 역사입니다”고 말합니다.
이어 서해중학교 학생회부회장인 민유빈양은 축사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 역사를 다시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며, 소녀상의 갖고 있는 7가지의 의미를 기억하기를 호소했습니다. 또한 “소녀상을 볼 때 좀 더 따뜻한 인식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이웃의 아픔도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는데요,
그 아픔을 고스란히 시에 담아내어 헌시 낭독하는 박수근 시인은 애절한 감정을 담아 듣는 내내 가슴 저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쟁당시 일본군에 의해 끌려갔던 그 나이대의 소녀를 상징하듯 김민주(목감초4)양의 헌화에서는 그래도 꽃인 듯 위안부할머니의 아리따웠을 소녀시절을 상기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기념식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처참한 세월을 보내고 돌아와서도 서러운 시선을 받으며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야했던 위안부할머니들의 인생을 표현한 시흥시무용단(대표 이승신)의 퍼포먼스로 기념식장은 비인지 눈물인지 뜨거운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이렇듯 소소한 일상으로 보내던 어린 소녀는,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강제로 끌려가고 어린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냐약한 소녀들은 나비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망가진 몸보다 더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한 맺힌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서러움에 대못 박힌 가슴을 안고 그래도 위안부할머니들은 거룩한 용서를 할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지면 말이지요.
우리는 더 이상 위안부할머니들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면 안되겠습니다. 그러기에는 그들의 평생의 고통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알고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며 분단국가의 아픔을 인지하고 우리는 그 아픔을 보듬어 안아야합니다.
비에 젖은 국화 한 송이의 헌화에서 서로가 담아냈을 마음 속 울림이 지금 살아계신 37명의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전달되어지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위안부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은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동안만큼은 큰 용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