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나라

  • 등록 2026.03.20 19: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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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속 K-유전자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우리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처음 보는 외국인은 종종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중 하나가 카페의 풍경이다. 우리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 또한 그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외국인들은 충격을 받는다. 사진을 찍고 누리소통망(SNS)에 올리며 "믿기 힘든 나라"라고 말한다. 자기 나라에서는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도 볼 수 있다.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노점상 앞에는 1000원짜리가 담긴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손님들은 굳이 바쁜 주인과 계산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상자에 돈을 넣고 거스름돈을 챙긴다. 상자 안의 돈을 훔쳐가거나 거스름돈을 더 가져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를 믿는 사회적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풍경이다. 

 

지하철 역사의 무인 양심 가판대나 편의점 밖에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파는 모습도 비슷하다. 어떤 나라에서는 몇 분 만에 사라질 물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종일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이런 풍경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특징과도 연결된다. 치안에 대한 신뢰다. 외국 언론은 종종 '여성이 밤늦게 혼자 거리를 걸어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는 점을 한국의 특징으로 꼽는다. 이런 평가를 들을 때 우리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온 삶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공자도 살고 싶어 했던 군자의 나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불려왔다. '예의를 중시하는 동쪽 나라'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우리를 그렇게 불렀지만 어느 순간 이 말은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다.

 

우리가 어떤 꺼림칙한 행동을 하려다가도 "동방예의지국 사람으로서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하며 멈추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를 갖추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오랜 세월 우리의 유전자에 녹아있는 셈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군자지국(君子之國)' 또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 민족을 군자의 나라 혹은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라고 부르는 표현으로 '후한서' 동이열전에 실려있다. 

 

공자는 군자를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학습을 통해 인격적 완성을 추구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바로 동쪽에 있다는 것이다.

 

공자가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일화도 유명하다. 구이는 한반도를 의미한다. 그러자 누군가 "그곳은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군자가 거주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도 살고 싶다고 했던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 그 후손이 카페에서 노트북을 훔쳐가지 않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예'를 형식적이고 낡은 문화, 하루빨리 버려야 할 유산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의 근본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부모에 대한 효, 어른에 대한 공경, 지하철 노약자석과 임산부석 같은 약자에 대한 배려, 줄 서기와 분리수거 같은 공동체적 실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예의 근본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맨'이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공경심을 드러내는 예법이다. 유영호 작가는 남미 우루과이부터 유럽 스페인까지 세계 곳곳에 '그리팅맨'을 세워 한국의 예를 전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종종 "전통과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라고 평가한다. 수백 년 이어온 유교적 예절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디지털 사회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첨단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장 중요한 DNA일지도 모른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최동민 기자 ch11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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