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KOREA' 여정이 시작됐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로 세상을 움직이듯,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한국 문화의 새로운 비상이 준비되고 있다. 오는 31일부터 내달 1일까지 열리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갈라 만찬 공연이 그 출발점이다.
이번 공연의 총지휘를 맡은 이는 양정웅 예술감독이다. 그의 무대에서는 언제나 예술과 철학, 그리고 기술이 공존한다. 전통의 미를 바탕으로 첨단 미디어를 결합한 그의 연출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국가의 첫인상'을 만드는 문화 외교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백호'와 '인면조'를 등장시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는, 이번엔 '나비'의 날갯짓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연결'과 '번영', '혁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올림픽이 전 세계를 향한 축제의 언어였다면, APEC은 세계 정상들에게 보내는 가장 섬세한 예술의 메시지다.

양정웅 '2025년 APEC 정상회의' 문화행사 예술감독.(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윤종규)
양 감독은 "일반 관객이 아닌 각국 정상들 앞에서 외교적인 예의를 지키면서도, 한국 문화와 예술이 지닌 메시지와 아름다움, 그리고 비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야 한다"며 공연 막바지까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또 "2018년 당시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거의 유일한 글로벌 케이(K)-콘텐츠였지만, 지금은 음악·드라마·예술 전 분야에서 K-컬처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올해는 정말 다양한 콘텐츠가 나와서 어떤 것을 공연에 담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많이 기대해 주고 응원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번 APEC은 양 감독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비전을 모색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2025 APEC KOREA'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정책브리핑은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양 감독을 공연 주제와 메시지, 소감 등에 대해 들어봤다.
◆ '2025년 APEC 정상회의' 문화행사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소감과 역할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문화행사 예술감독을 맡게 돼 정말 영광입니다. 요즘 케이(K)-컬처와 드라마,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점에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APEC의 무대를 맡게 돼 큰 영광이자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식 만찬 공연 총괄입니다. APEC은 국가 간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여서 본회의 전 각국 정상이 문화를 통해 교류하는 아이스브레이킹 무대를 선보이고 친분의 시간을 갖습니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 예술을 함께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죠. 이 밖에도 배우자 행사, 공식 행사 등 문화 관련 예술 연출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 이번 APEC 엠블럼이 '나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비에 담긴 메시지와, 그것이 APEC의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나비를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던 중 유홍준 국립중앙박문관장님께서 "제주도에 있는 나비 박물관은 꼭 가봐야 한다"고 의견을 주셨고, 그 말에 감동을 받아 나비 연구의 선구자인 석주명 선생님의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남계우 화백의 '군접도' 속 호랑나비를 모티브로 공연을 준비 중입니다.

양 감독은 지난 24일 남계우 화백의 '군접도' 속 호랑나비를 보여주며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APEC 정상회의' 갈라 만찬 공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윤종규)
우선 APEC 엠블럼의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번영을 돕는 나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나비가 APEC 회원 지역을 '연결'하고, 아태 지역 경제 협력 공동체를 '번영'시키고, 나아가 나비의 날갯짓이 '혁신'과 변화를 일으키는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이번 문화공연의 주제를 '나비의 여정, 함께 날자'로 정했습니다. 작은 날갯짓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나비효과'처럼, 이번 회의가 인류 공동 번영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정상 갈라 만찬 공연의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나요? 경제 중심의 회의로 알려진 APEC에서 문화예술공연을 통해 세계 정상들에게 한국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으신지요.
정상 갈라 만찬 콘셉트는 공연 형태로, '나비의 여정'을 주제로 1막과 2막, 3막으로 구성했습니다. 신라의 전통에서부터 시작해 현대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희망'과 '번영'의 메시지를 담아 준비하고 있습니다.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만큼, 한국의 전통 예술과 K-팝·댄스 같은 현대적 문화예술 콘텐츠의 요소를 조화롭게 녹이려고 합니다.
또 이번 APEC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인공지능(AI)이거든요. IT 강국으로서 공연에 사용되는 영상은 모두 AI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의 전통과 첨단기술이 만나 과거·현재·미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기획하면서 느꼈던 감동의 순간처럼, 이번 APEC 정상회의 만찬 공연을 준비 과정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올림픽 때 공식 행사는 전 세계를 향해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무대였다면, 이번 APEC 공연은 성격이 다릅니다. 일반 관객이 아닌 APEC 회원국 정상들 앞에서 외교적인 예의를 지키면서도, 그 안에 한국 문화와 예술이 가진 메시지와 아름다움, 그리고 비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야 했죠. 그런 점이 새롭기도 하고, 동시에 섬세한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라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습니다.

양 감독이 이번 APEC 정상회의 문화행사를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말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윤종규)
그리고 김민석 국무총리님과의 첫 회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 나비를 선택한 이유는 엠블럼 때문이 아니지만, 그 회의가 전환점이 됐습니다. 총리님께서 저에 대해 그리고 APEC 성공 개최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만남 이후, 원론적이고 철학적으로만 생각했던 예술적인 부분을 보다 직관적이고 쉽게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는 편인데, 총리님과의 만남이 제게 큰 예술적 자극이 됐습니다.
사실 그전에 저희 팀 작가가 나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어서 회의 후 버렸던 원고를 다시 꺼내 재조명해 새로운 안을 만들게 됐습니다. 도자기를 3000번 깨고 하나를 완성하듯, 그간의 모든 노력과 땀, 손길이 쌓여 지금의 작품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작품들 속에 나비가 자주 등장했더라고요. 나비는 영물로서 영적인 곤충이기도 하고 장자의 나비에 관한 꿈 '호접몽'을 인상깊게 보고 제 작품에 많이 적용시켰습니다.
◆ 경주는 천년의 시간을 품은 도시입니다. 본적이 '경주'인 만큼, 이번 APEC 정상회의 주제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 연결, 혁신, 번영'과 경주의 매력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해 보고 싶으신가요?
제 주민등록등본상 본적이 경주 황오동 16번지예요(웃음). 어릴 때 김유신장군묘나 태종 무열왕릉 근처에서 놀고, 문무대왕 수중릉이 보이는 대본해수욕장에서 수영하던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형산강 앞에서 개구리 잡던 기억도 생생하고요.
경주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연극을 연출할 때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바이블처럼 읽었고, 신라 시대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두 편 이상 만들었어요. 그만큼 신라의 정신과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이번 APEC 공연의 메시지도 신라에서부터 출발했어요.
신라는 소통과 문화, 평화를 중시했던 나라로,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국제적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또 왕릉에서 출토된 예술품들을 보면 우리 반도체를 떠올릴 만큼 정교한 기술로 오랫동안 황금시대로 불려 왔습니다.
아울러 경주는 로마처럼 전 세계 몇 안 되는 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죠. 그런 의미에서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는 건 정말 특별하고, 저도 공연에 그 경주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제 'K-컬처'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APEC 공연 무대에서는 어떤 형태로 '지금의 K-컬처'를 보여줄 계획인가요?
2018년만 해도 (싸이의) 강남스타일 외에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할 만한 K-팝이나 콘텐츠가 거의 없었습니다. 방탄소년단(BTS)도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고요.
그에 비해, 올해는 K-콘텐츠가 정말 다양해서 어떤 것을 공연에 담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 전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K-팝과 첨단 IT 기술 즉 아트&테크가 결합시켜서 아주 트렌디한 K-콘텐츠를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고 응원해 주세요.
◆ 마지막으로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번 APEC 문화행사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리 모두 함께 아름답게 날고 (그 작은 날갯짓이) '나비 효과'로 나타나 큰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