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농업 꿈꾸는 13년 차 청년농 "식량주권 지켜야죠!"

  • 등록 2025.10.17 15: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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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농정 협의체 공동대표 류진호 노란소쿠리 대표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삼면에서 불어드는 해풍이 초록빛 유자를 금세 노랗게 물들일 듯하다. 전국 유자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전남 고흥군의 10월은 유자가 익는 계절이다. 겉보기엔 금빛 향연이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고흥군 인구는 5만 9712명. 그중 65세 이상이 2만 7871명(46.7%)이다. 지방소멸위험지수로는 0.108로 고위험 지역이다. 드넓은 유자밭을 지킬 젊은 손길은 해마다 줄고 있다.

 

이런 농촌의 위기 속에서 정부는 지난 8월 '함께 만드는 케이(K)-농정 협의체(이하 K-농정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농업인·업계·소비자·전문가가 함께 농업·농촌의 현안과 미래 과제를 논의하고 국정과제의 사회적 합의와 추진 동력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K-농정 협의체 공동대표로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류진호 노란소쿠리 대표(34, 한국4-H중앙연합회 회장)가 위촉됐다. 

 

K-농정 협의체는 출범 직후 '농업법인 제도 개선'과 '공동영농법인 육성', '청년농업인재 육성', '제1차 농업고용인력 지원 기본계획' 등 현안 논의를 이어가며 예비농업인 제도, 청년농 법인취업 제도, 공공형 계절근로제 확대, 안전한 근로환경 조성 방안을 잇따라 내놨다. 류 대표는 K-농정 협의체에서 청년농업인을 대표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더불어 한국4-H중앙연합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 연합회는 전국 17개 시·도와 160여 개 시·군에 조직을 둔 비영리단체로 39세 이하 청년농업인 1만여 명이 모여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모색한다. 현장의 의견을 정책으로 제안하고 지역 간 교류를 통해 청년농업인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도록 돕는 역할도 크다. 이 같은 경험이 밑거름이 돼 류 대표는 K-농정 협의체 공동대표로 발탁됐다.

 

류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교 과수학과를 졸업한 뒤 고흥에 정착해 12년째 유자를 재배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방학마다 찾았던 할아버지 집의 유자나무와 할머니가 타주던 유자차의 추억이 그가 유자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처음엔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해 너무 힘들었다"던 그는 이제 재배를 넘어 가공·온라인 판매·체험을 아우르는 6차 산업으로 농장을 키워가고 있다. 6차 산업은 1차 산업(유·무형 자원)과 2차 산업(제조·가공), 3차 산업(체험·관광)을 결합해 농업의 수익 구조를 넓히는 방식이다. 

 

류 대표는 "농업이 오래 지속되려면 농산물의 고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청년농업인이 바라본 농촌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K-농정 협의체가 제시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류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K-농정 협의체 공동대표로 위촉됐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
K-농정 협의체는 농식품부가 중심이 돼 부처·지역·현장 농업인·전문가들이 함께 소통하는 창구입니다. 선배 농업인들과 직접 소통하고 배우는 기회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이전에도 청년농업인들이 지역 단위로 모여 농식품부에 의견을 제안하거나 정책을 건의해왔지만 이번 협의체는 그런 활동을 정례화하고 체계화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세부 논의를 이어간 뒤 12월에 성과 보고회를 열 계획입니다.

 

공동대표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2.7~2.8% 수준인 정부의 농업 예산을 5%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농업이 지속되려면 우리 땅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국민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식량주권을 지켜야 합니다. 해외 농산물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지만 국내 생산과 농업인이 먼저 보호받는 구조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런 기반이 만들어지려면 예산 확대 또한 필요한 부분이죠.

 

농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도시민이 농업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식사하셨습니까?"가 안부인사였지만 지금은 먹을거리가 넘쳐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제철 농산물의 가치를 알리는 교육과 홍보가 중요합니다. 횟집에서 제철 해산물을 찾듯 제철 과일과 곡식을 찾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도시와 농촌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돼야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고령 인구가 많은 고흥에서 청년농업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한 경우도 있고 여러 사정으로 농촌에 정착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결국 농촌과 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건 같습니다. 돈을 벌려면 도시로 가는 게 맞죠. 사람도 많고 돈도 많이 돌 테니까요. 그럼에도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남아 있는 건 식량주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행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처음 고흥에 내려왔을 때예요.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라 수확한 유자를 전부 농협 수매장에 갖다주는 수밖에 없었어요. 가격 협상은커녕 농사가 단순히 키우는 일로만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죠. 이왕 하는 농사, 내 이름 걸고 팔아보자는 마음으로 '노란소쿠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판매를 시작한 후 고객이 브랜드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주면서 농사가 재미있어지고 자부심도 커졌습니다.

 

유자는 11월이 제철이라고요. 그전까지 농장은 어떻게 움직이나요?
1~3월에는 나무를 다듬는 전정 작업을 합니다. 4월부터 병해충을 막기 위해 방제를 시작하고 5월 이후에는 한 달 간격으로 약을 살포해요. 잔류 농약 때문에 수확기 45일 전에는 방제를 마쳐야 합니다. 9월 추석 무렵이면 초록빛 유자가 서서히 노란색을 띠기 시작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즌 즈음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갑니다. 12월 초면 나무에 달린 유자는 거의 다 따낸 상태죠. 가공업체는 11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유자를 가공해 냉동창고에 보관합니다. 시중에 나온 유자 제품은 냉동 원료가 필요할 때 꺼내 만든 거예요. 생과는 저장이 어려워 주로 당절임이나 원액 형태로 보관해 다양한 제품에 활용합니다.

 

유자의 특징을 말한다면?
유자 자체로는 향이 강하지 않은데 살짝만 눌러도 상큼한 향이 확 퍼져요. 껍질이 두껍고 수분이 많아 과피와 과육이 따로 노는 편이죠. 유분기도 많아서 불에 가까이 대면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판매할 때 불꽃 시연을 하면 손님들이 깜짝 놀라면서 유자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곤 해요(웃음). 연료로 쓸 정도는 아니지만 그만큼 독특한 성분이 많아요. 그 밖에도 유자에는 리모노이드와 플라보노이드 같은 영양 성분이 풍부합니다.

 

기후위기로 농사짓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올해 재배 상황은 어떤가요?
농부에게 풍년은 평생 몇 번만 맞아도 큰 복이라고 해요. 매년 풍년일 수 없다는 걸 알고 대비하지만 갑작스럽게 호우가 쏟아지거나 장기간 가뭄이 이어지면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듭니다. 유자는 대부분 노지에서 키우는데 올해는 5월 기온이 예년보다 낮아 꽃이 필 때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농가들도 작황이 전반적으로 많이 줄 것으로 봅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고 우리는 거둘 뿐"이라는 얘기가 실감이 나는 해입니다. 그래서 젊은 농부들은 기후영향을 줄이기 위해 시설원예나 스마트팜처럼 환경을 제어하는 방식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유자도 스마트팜 같은 첨단 농업환경에서 재배할 수 있을까요?
포도처럼 비가림 시설을 갖추는 경우는 있지만 유자는 대부분 노지 과수라 완전한 온실을 설치하기가 쉽지 않아요. 바람을 막는 정도의 시설은 가능하지만 투자 대비 수익을 올리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유자 농업 체험장까지 운영하고 있다고요.
체험장은 원래 가공공장으로 쓰려던 공간이었어요. 농사만으로는 규모가 작다 보니 수익원을 다양화해야 했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혼합음료는 HACCP(해썹,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의무 품목이라 위탁 생산을 맡기고 대신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중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대면 판매가 모두 중단됐습니다. 수익을 낼 다른 방법을 찾다 농촌교육농장 품질 인증을 받고 체험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당시 집합 제한이 있어서 소규모 클래스 형태로 운영했는데 부모님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입소문이 나 단체 방문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청년농업인의 강점이 이런 복합문화공간 운영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부분일 거예요. 작물 재배를 하고 싶어 이곳에 내려왔지만 막상 현실은 농사만 짓는 일차원적인 구조가 아니더라고요. 소농이 버티기는 점점 어렵고 대농이 되기까지는 시간과 투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융복합 사업을 선택했습니다. 처음 귀농하면 입지 조건부터 인허가 절차까지 시행착오가 많습니다. 이런 과정을 줄일 정책적 지원이 더 촘촘해진다면 청년들이 꼭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업과 관련된 콘텐츠나 제품을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높이는 길이 훨씬 넓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10년 뒤 유자 농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솔직히 시장 변화가 너무 빨라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유자 박스를 10kg 단위로만 팔았는데 지금은 5kg, 3kg, 1kg 소포장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1인가구가 늘고 소비 방식이 달라진 탓이죠. 게다가 유자는 저장하려면 설탕 절임이 필수인데 요즘은 무설탕 트렌드가 강해 고민이 큽니다. 유자차를 지금처럼 찾을지도 확신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가공 제품을 다양화하고 수출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유자 농업이 어떻게 진화해야 할지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명성 기자 kms4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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