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시대 제조업 강국 노하우가 피지컬 AI 속으로

  • 등록 2026.02.02 11: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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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뒤흔든 K-로봇
2026.02.02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키 190㎝ 정도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처럼 부드럽게 걸어 나옵니다. 손가락은 물론이고 360도 회전이 가능한 56개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팔을 뻗어 선반 위 물건을 꺼내는 동작도 자연스럽습니다. 팔을 뻗으면 최대 230㎝ 거리까지 손이 닿을 수도 있습니다.

 

1월 5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 세계 최대 테크 전시회인 'CES 2026'에서 이날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모델 '아틀라스'의 모습입니다. 아틀라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에 투입될 실전 모델입니다. 50㎏ 하중도 거뜬히 견딜 수 있어 실제 제조 현장에서 무거운 부품을 옮기는 데 용이하고 미세한 조립 작업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습니다. 영하 20도 혹한과 영상 40도 폭염에도 쉼 없이 일할 수 있고요, 스스로 배터리 스테이션을 찾아가 배터리를 교체할 줄도 압니다. 인간의 노동을 로봇이 완벽히 대체하는 세상이 그야말로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올해 'CES 2026'을 달군 키워드는 '피지컬 AI'였습니다. 피지컬 AI란 디지털 가상공간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인공지능(AI)을 말합니다. 컴퓨터 모니터 및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인간의 명령에 텍스트나 음성으로 답하기만 하던 AI가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 '몸'을 얻는 것과도 같습니다. 로봇과 AI가 결합해 공장 제조업부터 가사노동까지 돕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AI가 자율주행차나 자율실험실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피지컬 AI를 "향후 5년 안에 세상을 바꿔 놓을 게임 체인저"로 꼽는 이유입니다.

'피지컬 AI' 어디까지 왔나

 

빨래 개고 청소하고… CES 장악한 '피지컬 AI'

 

로보틱스는 사람들이 '피지컬 AI'라는 단어를 들을 때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로보틱스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뜨거운 분야는 휴머노이드(humanoid·인간형 로봇)입니다. 이름처럼 인간을 닮은 로봇이죠. 가정에서 빨래, 청소를 대신할 수도 있고, 공장에서 사람이 하기 힘들고 위험한 일에 투입될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얼굴·손·발 등 사람의 신체를 빼닮은 로봇을 만들어 노동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단순히 사람을 닮은 로봇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보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로봇인 거죠.

 

LG전자도 올해 CES에서 홈로봇 'LG 클로이드(CLOiD)'를 통해 '가사 해방'이란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 로봇은 머리와 두 팔, 다섯 손가락을 갖췄습니다. 하체엔 바퀴를 달아 집 안에서 일하기 쉽게 만들었고요. 음성 기반 생성형 AI가 탑재돼 "빨래 좀 해줘" 같은 사람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습니다. 빨래를 꺼내서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젖은 빨래를 건조기에 넣을 줄도 압니다. 건조가 끝나면 수건을 반듯하게 접어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식기세척기에 식기를 집어넣어 돌리고 깨지기 쉬운 식기는 손가락 끝 압력을 섬세하게 조절해서 안전하게 꺼냅니다. 아침밥도 책임집니다. 이 홈로봇은 사람이 전날 아침 식사 계획을 입력해 놓으면 여기에 맞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오븐에 빵을 구워 식탁에 차려내기도 합니다. 자율주행 기능이 있어서 벽이나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고 움직이고요. 그야말로 '제로 레이버 홈', 즉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집을 실현하는 로봇인 셈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34㎝(13.4인치)의 동그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얼굴처럼 만든 로봇 'AI OLED 봇'을 공개했습니다. 패널을 통해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선 '로봇 조교'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가전과 서비스를 AI로 연결하는 'AI 리빙 플랫폼'을 시연했습니다. 냉장고가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파악해 레시피를 제안하고 인덕션은 여기에 맞춰 자동으로 화력을 조절하는 식입니다. 가전의 초연결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죠.

 

무섭게 질주하는 중국 로봇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인간형 로봇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중국 로봇 기업들의 질주가 무섭습니다. CES에 휴머노이드를 선보인 39개 기업 중 21곳이 중국 기업입니다. 이 중에서도 '유니트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유명한 기업입니다.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G1'은 CES 현장에서 관람객 신청을 받아 로봇과 인간끼리 즉석 복싱대회를 열었죠. 몸을 비틀고 주먹을 피하는 각종 권투 동작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항복' 하면서 링 위에 드러눕는 모습까지 보여 관람객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니트리의 또 다른 휴머노이드 'H2'는 날아차기와 공중회전 같은 고난도 격투기 동작까지 해낼 줄 압니다. 발차기로 머리 위에 매달린 수박을 정확히 가격하는 영상이 공개돼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로봇이 이젠 사물과의 거리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균형 있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단계까지 진화한 것입니다.

 

중국 기업 '드리미'는 세계 최초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로봇청소기 '사이버X'를 선보였습니다. 계단은 오랫동안 로봇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금기 구역으로 여겨졌죠. 그만큼 사이버X가 계단을 빠르게 올라갈 때 관람객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또 다른 중국 기업 'TCL'도 사용자 지시에 따라 집 안에서 가전제품을 제어할 줄 아는 귀여운 반려 로봇 '에이미'를 선보였고요. 중국 스타트업 '제로스'가 내놓은 38㎝ 초소형 가정용 휴머노이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약 먹는 시간, 스케줄 등을 챙겨주고 사람과 대화를 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질세라 각자 특화 로봇을 선보였습니다. 미국 '어질리티로보틱스'는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디짓'을 소개했습니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빈 컨테이너를 들어 옮기고 정리하는 반복 작업을 해내는 로봇입니다. 기존 창고를 로봇에 맞게 바꾸지 않아도, 사람이 일하는 공간에서 '알아서' 움직이고 일할 수 있는 로봇이죠. 또 다른 미국 로봇 기업 '리치테크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덱스'를 선보였습니다. 커피를 만들거나 음식을 배달할 수 있는 로봇입니다. 미국 '오시코시코퍼레이션'은 높은 곳에서 용접 같은 작업을 하는 로봇 '리프트'를 공개했습니다. 겉모습은 포클레인처럼 생긴 이 장비는 사람 대신 높은 곳에 팔을 뻗어 작업을 대신합니다.


'제로 레이버 홈'에 한층 가까워진 모습을 구현하는 홈로봇 'LG 클로이드'가 세탁물 바구니에서 빨랫감을 꺼내 세탁기에 넣고 있다. 사진 LG전자

 

자동차·트랙터까지 결합하는 AI

 

AI가 자율주행 자동차와 결합한 형태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 '엔비디아'는 이번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알파마요'를 공개했습니다. 알파마요가 각종 자율주행 차량에 탑재되면 복잡한 상황에서도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차량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가령 골목길을 주행할 때 공이 굴러가는 것을 카메라로 감지하면 곧바로 어린이가 공을 주우러 올 상황까지 예측하고 달리는 것을 멈추는 식입니다. 엔비디아는 메르세데스벤츠와 협력해 알파마요를 탑재한 양산 차량을 올해 1분기 안에 미국 시장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미국 '퀄컴'도 독일 완성차 업체 'BMW'와 3년 동안 함께 개발한 자율주행 모델 '스냅드래곤 라이드'를 선보였습니다. BMW의 신형 전기차 SUV 모델 'iX3'에 이 소프트웨어가 탑재됐죠. 이 차는 단순히 운전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신호등·도로 시설을 잘 읽고 주변 차량과 보행자 정보를 확인하면서 주행합니다. AI가 주차도 알아서 해주고요. 피지컬 AI의 모빌리티 버전이 이제 곧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오게 되는 셈이죠.

 

AI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농업 분야에도 피지컬 AI는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농기계 업체 '존디어'가 내놓은 최신형 농업용 트랙터입니다. 이 트랙터는 주행 중 작업 속도, 연료 소모량, 엔진 사용률은 물론 토양 습도와 작물 상태를 감지하는 센서 데이터를 스스로 수집합니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클라우드로 전송돼 AI가 일조량·강수량·토질 데이터와 함께 분석하죠. AI는 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어느 구역에 물을 더 줘야 하는지, 비료를 얼마나 뿌려야 하는지, 작업 속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계산해 최적의 농사 방식을 제안하는 식입니다. 이 판단이 트랙터로 다시 전달되면 파종·살포·주행경로를 자동으로 조정해 실제 작업까지 해내는 것이죠.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얼굴처럼 만든 로봇 'AI OLED 봇'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피지컬 AI, 한국의 숨은 경쟁력 되나

 

전문가들은 이번 CES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피지컬 AI 분야에서 더 이상 '패스트 팔로어'에만 머물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합니다. 미국과 중국, 유럽에 비해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더 정교하고 현장 친화적인 피지컬 AI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것입니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단순히 로봇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판단하며 작업하는지를 학습시키는 데이터에 있습니다. 특히 휴머노이드나 산업용 특화 로봇을 고도화하려면 수십 년간 현장에서 축적된 숙련공들의 작업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가 필수인데요, 이 지점에서 한국의 강점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번 현대차가 선보인 아틀라스 로봇 역시 제조 현장에서 얻은 데이터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요.

 

한국은 조선·자동차·반도체·방산·기계·전자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나라입니다. 울산의 조선소, 창원의 기계 공장, 평택과 화성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일해온 숙련공들은 일할 때 필요한 손의 각도와 힘의 분배, 작업 순서까지 정확히 알고 있죠. 이렇게 이들이 익혀온 경험을 AI 학습 데이터로 옮긴다면 그 로봇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일 잘하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대량 생산과 빠른 확산을 중시하는 중국, 범용성을 앞세운 휴머노이드 개발에 집중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조선·방산·반도체 등 특정 산업 현장의 작업을 깊이 학습한 정밀 피지컬 AI로 경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AI는 화면 밖으로 나와 몸을 입고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복잡한 물류창고에서, 우리 거실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조업 강국을 넘어 '피지컬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K-로봇의 질주도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피지컬 AI란?

 

디지털 공간에서 물리적 세계로 나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AI). 인간의 뇌가 몸을 얻어 현실에서 움직이는 것과도 비슷하다.

 

김주창 기자 insik23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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